작년 12월, 60대 여성 한 분이 사무실에 오셨습니다. 경남에서 작은 제조업 공장을 20년 가까이 해오신 분이었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제가 질문지 맨 위 여백에 빨간 펜으로 제일 먼저 적은 단어가 있습니다.
중지명령.
이름도 나이도 채무액도 적기 전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분 공장에는 이미 경매가 두 건 걸려 있었습니다.
- 강제경매 — 2023년 12월 개시. 개인채권자가 판결문을 들고 신청한 것. 청구금액 약 1억 6천만 원
- 임의경매 — 2025년 3월 개시. 은행이 근저당권으로 신청한 것. 청구금액 약 4억 8천만 원
경매 목적물은 공장 부지 1,032㎡와 건물 두 동. 공장저당법에 따라 안에 있는 호이스트 크레인까지 기계기구목록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 공장이 넘어가면 그분 사업은 그날로 끝나는 것이였습니다.
경매개시결정이 2023년에 났으니, 상담 시점에 이미 2년이 지나 있었습니다.
왜 중지명령을 두 통이나 써야 했나
개인회생을 알아보신 분들은 "금지명령"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저는 금지명령 신청서 한 통과, 중지명령 신청서를 따로 두 통 냈습니다.
이유는 두 제도가 서로 다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금지명령은 채권자 전체를 상대로 하는 명령입니다. 채권자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전 채권자를 상대로 앞으로 강제집행·가압류·가처분을 하지 말라, 추심 전화를 하지 말라 — 이런 것을 한 번에 막습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일을 막는 데 강력합니다.
중지명령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특정 사건을 지목해서 세우는 명령입니다. 신청서에 사건번호를 특정해야 합니다. "울산지방법원 2023타경○○○○호 부동산강제경매 절차를 중지한다" — 이런 식으로요.
이 사건처럼 경매가 이미 두 건 진행 중이면, 사건이 두 개니까 신청서도 두 통입니다. 첨부서류로는 각 경매개시결정문을 붙입니다. 경매개시결정문이 없으면 사건번호를 특정할 수 없어서 신청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상담 오실 때 이 서류부터 챙겨오시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근거 조문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93조입니다. 신청서 신청원인란에는 이렇게 적습니다.
위 사건의 개시결정 전에 신청인 소유의 부동산에 대하여 압류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채권자간의 형평을 해하게 되며, 개인회생절차에 따른 변제계획의 수행에 큰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신청서 제출과 같은 날 접수했습니다
개인회생 신청서를 접수한 날짜와 중지명령 신청서를 접수한 날짜가 같습니다. 12월 26일.
며칠 뒤에 내도 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건 경매는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온 것이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매각기일이였습니다.
매각기일이 지나 낙찰이 되고 매각허가결정이 확정되면, 그 뒤에 중지명령을 받아도 되돌릴 수는 있지만 절차가 많이 복잡해 지니까 되도록 낙찰 전에 경매를 정지 시켜야 합니다.
경매가 걸린 사건은 접수 순서를 이렇게 잡습니다. 서류를 완벽하게 갖춘 다음에 한꺼번에 내는 게 아니라, 일단 신청과 중지명령부터 넣고 나머지는 보정으로 채웁니다. 실제로 이 사건도 신청 이후 보정을 여섯 번 넣었습니다.
다만 중지명령이 날 수 있을 정도의 서류는 모두 제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변제계획안은 차후 제출할 수 있다고 함께 제출하지 않으면 중지명령 신청이 기각될 수 있습니다.
결정문을 받았는데, 경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2월 30일에 중지명령 결정이 났습니다. 중지결정 두 건, 금지결정 한 건. 12월 31일에 정본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중지명령 결정문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놓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결정문을 채무자(또는 대리인 법무사)가 받았다고 해서 경매가 자동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중지결정문 맨 아래에는 법원이 이렇게 찍어 놓습니다.
※ 이 결정문을 집행기관(집행을 실시하고 있는 집행법원 또는 집행관)에 제출하여야만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생 사건을 보는 재판부와 경매 사건을 보는 재판부는 다른 곳입니다. 회생법원이 "경매 절차를 멈춰라"라고 결정을 해도, 경매 기록을 들고 있는 집행법원 쪽에는 그 결정문이 접수되기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매각 절차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본을 받은 12월 31일, 각 경매 사건마다 강제집행정지 신청서를 따로 작성해서 집행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두 건이니 두 통입니다.
이 한 단계를 빠뜨리고 "법원에서 중지 결정 났으니까 됐다"고 안심하고 있다가 매각기일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결정문은 받아 오는 것으로 끝나는 서류가 아니라, 들고 가서 내야 하는 서류입니다.
6일 동안 있었던 일
| 날짜 | 한일 |
| 12월 26일 | 개인회생 신청서 접수 + 중지명령 신청서 2통 접수 |
| 12월 30일 | 중지결정 2건, 금지결정 1건 |
| 12월 31일 | 결정정본 수령 → 각 집행법원에 강제집행정지 신청 |
2년 동안 걸려 있던 경매 두 건이 이 6일 사이에 섰습니다.
그런데 '중지'는 끝이 아니라 유예입니다
여기까지만 쓰면 좋은 이야기로 끝나는데, 실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반드시 덧붙여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지명령의 효력은 개시신청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결정문 주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개시결정이 나면 그때부터는 제600조가 이어받습니다.
문제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 즉 근저당권자가 넣은 임의경매입니다. 이건 제600조 제2항에 따라 변제계획 인가결정일 또는 폐지결정 확정일 중 먼저 오는 날까지만 중지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근저당권자는 별제권자라서 개인회생 절차와는 별개로 담보권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즉 경매절차를 계속진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개인회생 사건의 변제계획이 인가(통과)되어도 그 담보권은 그대로 살아 있고, 경매를 다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개인회생으로 은행 근저당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폐지결정이 확정되면, 중지되어 있던 경매는 그날부터 다시 굴러갑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도 적습니다
이 사건은 2026년 3월에 개인회생 사건에 대한 개시결정을 받았습니다. 중간에 개인채권자 한 분이 이의신청을 두 차례 걸어와서 답변서도 두 번 썼습니다. 채권자목록 정정, 주소보정, 채권조사 대응까지 여덟 달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2026년 7월, 폐지결정이 났습니다. 인가 전 변제금이 밀렸고, 미납금 보정명령이 나왔는데 채무자가 모두 납부하지 못했습니다.
폐지가 확정되면 중지되어 있던 경매 두 건은 다시 진행됩니다. 8개월 동안 만들어 놓은 것이 한 번에 원위치가 됩니다.
이 이야기를 굳이 쓰는 이유는, 중지명령의 성격이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중지명령은 시간을 벌어 주는 제도이지, 경매를 없애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벌어 놓은 시간 안에 변제계획을 인가받고, 그 다음에도 매달 변제금을 넣어야 비로소 절차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경매를 막는 것보다 어려운 게 막아 놓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그걸 다시 배웠습니다.
경매가 걸린 상태에서 개인회생을 생각하신다면
- 매각기일부터 확인하십시오. 대법원 법원경매정보에서 사건번호로 조회됩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가 모든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 경매개시결정문을 챙기십시오. 사건번호를 특정해야 중지명령 신청이 됩니다.
- 신청과 중지명령을 같은 날 접수하십시오. 서류를 다 갖추고 나서 내는 게 아닙니다.
- 결정문을 받으면 반드시 집행법원에 제출하십시오. 이 단계를 빠뜨리면 결정문은 종이일 뿐입니다.
- 담보권 경매는 인가 후에 되살아난다는 걸 전제로 계획을 짜십시오. 집을 지키는 문제와 채무를 조정하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경매개시결정을 받았다고 늦은 게 아닙니다. 이 사건도 2년이 지난 상태에서 6일 만에 세웠습니다. 다만 매각기일이 지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경매가 걸려 있다면, 가장 먼저 확인하실 것은 남은 날짜입니다.
*본 글은 실제 처리한 사건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의뢰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이름·지역·사건번호 등 식별 가능한 정보는 모두 변경하거나 생략했습니다.